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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장화홍련] 역사 및 내용 그리고 의의카테고리 없음 2023. 1. 27. 13:56반응형
장화홍련 동화 [장화홍련] 역사
조선시대 작가, 연도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평안북도 철산(鐵山) 지방에서 1656년 있었던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전해 오던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공안류 소설(公案類小說)[사법관청의 법정에서 일어난 소설]인 동시에 가정형 계모소설(家庭型繼母小說)가정비극 소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한편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전해지는 아랑 전설과도 비슷한 내용이 많아 장화홍련전의 원형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실제 장화 홍련 사건에 관한 내용은 후에 서술되었다.
내용
세종조에 평안도 철산에 배무룡이라는 좌수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선녀로부터 꽃송이를 받는 태몽을 꾸고 장화를 낳았다. 그리고 2년 후 홍련을 낳았다. 홍련이 다섯 살 때에 부인이 죽자, 좌수는 대를 잇기 위하여 허 씨와 재혼하였다. 허 씨는. 용모가 추할 뿐 아니라 심성이 사나웠으나 곧 삼형제를 낳았다. 허씨는 아들이 생긴 뒤 전부인의 딸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장화가 정혼을 하게 되자, 혼수를 많이 장만하라는 좌수의 말에 재물이 축날 것이 아까워 장화를 죽이기로 흉계를 꾸몄다. 큰 쥐를 잡아 털을 뽑아서 장화의 이불속에 넣었다가 꺼내어 좌수에게 보여 장화가 부정을 저질러 낙태하였다고 속이고, 아들 장쇠를 시켜 못에 빠뜨려 죽였다. 그 순간 호랑이가 나와 장쇠의 두 귀와 한 팔, 한 다리를 잘라가 장쇠는 병신이 되었다.이에 계모는 홍련을 더욱 학대하고 죽이려 하였다. 홍련은 장쇠에게 장화가 죽은 것을 알았고, 또 꿈에 장화가 홍련의 꿈에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사실을 알려주자, 홍련은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로부터. 그 못에는 밤낮으로 곡소리가 났으며, 원통하게 죽은 두 자매가 그 사연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었다. 이런 이상한 일 때문에 부사로 올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정동우(鄭東佑)라는 사람이 자원하여 부사로 부임하였다. 도임. 초야에 장화·홍련이 나타나 원통하게 죽은 원인과 원을 풀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튿날 부사는 좌수 부부를 문초하였는데,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더니 야음을 틈타 가출하고 소식이 없으며, 장화의 낙태물이라고 증거물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이를 사실로 여기고 좌수 부부를 훈방하였다. 그날. 밤 꿈에 두 소저가 나타나 계모가 제시한 낙태물의 배를 갈라 보면 알 것이라 하고 사라졌다. 이튿날 부사는 다시 그 낙태물을 살피고 배를 갈라 보니 쥐똥이 나왔다. 이에 부사는 계모를 능지처참하고, 장쇠는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좌수는 훈방하였다. 그리고. 못에 가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碑)를 세워 혼령을 위로하였더니, 그날 밤 꿈에 두 자매가 다시 나타나 원한을 풀어 준 일을 사례하며, 앞으로 승직할 것이라 하였다. 그뒤 그 말대로 부사는 승직하여 통제사에 이르렀다. 한편, 배좌수는 윤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는데, 꿈에 두 딸이 나타나 상제가 전세에 못다한 부녀의 연분을 다시 이으라고 하였다는 말을 전하였다. 윤씨부인은 꿈에 상제로부터 꽃 두 송이를 받은 태몽을 꾸고 쌍둥이 자매를 낳았다. 꿈을 생각하여 장화와 홍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두 자매가 장성하여 평양의 부호 이연호의 쌍둥이 이윤필·윤석과 혼인하여,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의의
[장화홍련전]은 계모와 전처자식의 관계에서 빚어질 수 있는 윤리의 문제점과 무능한 가장으로 인해 가정이 파멸되는 비극적 모습을 가족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후처제의 제도적 모순과 함께 가장의 무책임을 함께 다루는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후처를 절대 악으로 장화홍련을 절대 선으로 보기는 어렵긴 하나 악인의 잘못된 행동은 언젠가 꼭 밝혀져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형태를 보여주어 나쁜 일을 하면 안 되고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가족구성원 간의 갈등을 그저 지켜보기만한 방관자 아버지의 잘못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가해자 피해자가 아닌 방관자에겐 잘못이 없는가? 가장인 아버지가 그들 사이의 갈등을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면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이 아닌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폭력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에도 방관자는 존재한다. 방관자들의 침묵도 잘못되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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